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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노소영 이혼소송의 결정타는 노태우 비자금

노태우, 김영삼에게 대선 자금으로 3천억 원 만들어 주었다!

NGO글로벌뉴스 | 기사입력 2024/06/05 [14:49]

최태원-노소영 이혼소송의 결정타는 노태우 비자금

노태우, 김영삼에게 대선 자금으로 3천억 원 만들어 주었다!

NGO글로벌뉴스 | 입력 : 2024/06/05 [14:49]

 

노태우, 김영삼에게 대선 자금으로 3천억 원 만들어 주었다!

김영삼은 이 돈 들통날 위기 처하자 '5공 특별법' 만들어 전두환 노태우 구속

  © NGO글로벌뉴스

지난 5월 말, 서울 고등법원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부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흥미진진한 판결을 내렸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SK그룹의 성장에 기여했다고 인정한 것이다. 따라서 부인 노소영 씨에게 위자료 20억 원과 함께 최태원 회장의 SK그룹 지분을 분할하여 13,800억 원을 주라는 내용이었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최태원 회장은 자신의 재산을 6535로 노소영 관장과 나눠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2심 재판부가 노소영 씨의 재산분할 요구를 받아들인 이유는 1991년 노태우 대통령의 비자금이 최종현 선경그룹(1998SK그룹으로 사명 변경) 회장에게 전달됐고, 최종현 회장은 이를 담보하기 위해 50억 원짜리 약속어음 6장을 노태우 측에 건넸다.

 

이 자금은 김옥숙 여사가 1998년 노태우 비자금을 최종현 회장에게 맡겼다고 기록한 '선경 300이란 메모를 통해 밝혀졌다. 김옥숙 여사의 메모에 같이 적힌 다른 사람 명의의 비자금들이 김영삼 정부 시절 역사바로세우기 수사·재판에서 모두 드러나 환수되었다. 이를 확인한 재판부는 선경 300이란 김옥숙 여사의 메모가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리하면 노태우 대통령이 비자금으로 조성한 자금 중 300억 원을 최종현 회장에게 대여했고, 최 회장은 이 돈을 언제까지 갚겠다면서 약속어음을 발행한 것이다.

 

최종현 회장에게 제공된 노태우 비자금 300억 원은 최 회장이 태평양증권 인수 자금으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태평양증권을 인수한 최종현 회장은 이 회사를 활용하여 아들 최태원 회장의 재산 형성을 이루게 되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이 무렵 최종현 회장의 태평양증권 인수를 둘러싸고 정치권 일부에서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노태우 대통령이 방패막이 역할을 함으로써 당국의 조사나 자금 추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 최태원-노소영 이혼소송에서 위자료 20억 원과 함께 최태원 회장의 재산을 분할하여 1조 3,800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사진은 KBS 보도화면 캡처).  © NGO글로벌뉴스

재판부는 이런 정황증거를 통해 SK그룹 급성장의 배경에는 노태우와 사돈 지간인 최종현 회장의 정경유착이 결정적 요인이었음을 인정하고, 이러한 정경유착으로 인해 만들어진 재산을 6535의 비율로 나눠야 한다는 판결을 한 것이다.

 

여기서 주의 깊게 봐야 할 점은 선경 300비자금은 김영삼 정부의 역사바로세우기 재판 당시 노 대통령이 유죄 선고로 추징된 비자금 2,629억 원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대체 노태우는 2,629억 원 이외에 얼마의 비자금을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은닉해 놓았다는 것인가.

 

노태우 비자금을 찾아서

 

필자는 지난 1999년 월간조선 기자 시절 노태우 육성회고록을 연재하기 위해 연희동을 2년 여 출입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자신이 생존해 있는 동안 보도하지 않는 조건으로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이 작동하는 원리를 설명했고, 이 와중에 자신이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은 비자금 문제도 적나라하게 털어놓았다.

 

▲ 김옥숙 여사가 작성한 '선경 300억' 메모 내용을 보도한 언론(사진은 채널A 화면 캡처).  © NGO글로벌뉴스

 

노태우 회고록에 의하면 5공 시절 정치자금 조성에는 몇 기지 원칙이 있었다. 첫째, 이권을 전제로 한 자금은 받지 않는다. 둘째, 제공되는 자금에는 조건을 달지 않는다. 셋째, 외국 기업인이 수주 대가로 제공하는 커미션은 받지 않는다(대신 원가에서 그 액수만큼 깎게 한다).

 

이 원칙에 의거하여 전두환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기업으로부터 직접 자금을 받아 관리했다. 후임자 노태우도 상황은 거의 비슷했는데, 6공에서는 위의 원칙에 몇 가지를 더 추가했다. 첫째, 재무제표가 나쁜 기업, 둘째,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은 기업, 셋째, 정치자금 헌납으로 기업운영에 지장을 초래하는 기업에게는 정치자금을 받지 않기로 했다.

 

노태우는 정치자금 관리를 순박하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이현우 경호실장에게 맡겼다. 1990년 초 3당 합당으로 민자당이 출범한 후 노태우 대통령은 당 운영비 외에 김영삼·김종필·박태준 최고위원에게 매달 적지 않은 자금을 보냈다. 특히 야당 투사였던 김영삼에겐 두 사람보다 더 많은 활동자금을 제공했다고 한다.

 

노태우, 김영삼에게 대선자금 3천억 원 마련해줘

 

온갖 우여곡절 끝에 김영삼이 민자당 대통령 후보로 선정되었다. 김영삼은 노 대통령에게 대선 자금으로 4~5천억 원을 요구했다. 노태우는 너무 과한 액수를 요구하는 것 아닌가 하면서도 기업사정을 잘 아는 금진호 상공부장관, ‘금융계의 황제라 불린 이원조 의원에게 김영삼 후보의 대선을 도우라고 지시했다.

▲ 5, 6공 시절 '금융계의 황제'로 불리며 전두환 노태우의 비자금 조성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이원조 의원.  © NGO글로벌뉴스


노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금진호·이원조는 김영삼 후보를 위해 각각 1천억 원 정도 자금을 모아주었다고 한다. 대선 막바지에 김영삼 후보가 노 대통령에게 자금이 모자라니 도와 달라SOS를 쳤다. 노 대통령은 금진호 장관을 통해 1천억 원을 제공했다고 한다. 돈을 전달받은 김영삼 후보는 한밤중에 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이제 살았습니다. 고맙습니다라며 감사의 인사 전했다. 노태우가 김영삼 대선을 위해 3천억 원을 도와준 셈이다.

 

노태우는 1993225일 청와대를 떠나면서 김영삼 대통령을 위해 청와대 금고 안에 100억 원 이상의 돈을 넣어주었다고 한다.

 

전두환, 노태우에게 대선자금 2천억 원 제공

 

여기까지는 노태우 대통령의 회고록에서 밝힌 내용이다. 지금부터는 노태우 회고록에도 기록되지 않은, 노태우가 필자에게 증언한 정치자금 동향을 소개한다.

▲ 노태우 회고록에서 김영삼 대통령에게 비자금 3000억 원을 지원했다는 내용을 기사회한 조선닷컴 화면  © NGO글로벌뉴스


비자금 문제의 출발은 19876·29 선언으로 직선제 개헌 이후 치러진 대선이었다. 노태우가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결정되자 전두환 대통령은 노태우 후보를 불렀다. 이날 전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가 자금 마련을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손을 벌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라면서 모든 책임은 내가 지고 무덤까지 갈 것이니 반드시 정권 재창출에 성공해 달라면서 대선 자금을 전달했다.

 

당시 전 대통령이 준비한 대선 자금은 후보 개인이 집행하는 자금과 공조직(정당 조직) 가동비 두 가지였다. 노태우 후보는 전 대통령으로부터 후보 개인이 집행하는 자금으로 1,000억 원을 받아 사용했고, 공조직 가동비(1,0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액수는 알려지지 않음)는 당시 여당이었던 민정당으로 전달되어 당에서 집행했다고 한다. 전두환 대통령은 정권 재창출을 위해 2,000억 원+α(알파)를 준비하여 노태우 후보를 도운 것이다.

 

노태우 후보는 이 돈으로 대선을 치렀고, 야권은 김영삼·김대중이 단일화에 실패하는 바람에 어부지리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었다. 전두환 덕분에 자금 걱정 없이 대선을 치른 노태우는 자신도 정권 재창출을 위해 똑같은 방법을 사용키로 했다. 그 결과 재임 중 짠돌이란 비난을 무릅써 가며 기업인들이 제공한 자금을 모아 3천억 원을 준비했다.

 

노태우가 김영삼에게 제공한 대선자금

 

노태우는 자신이 전 대통령에게 받은 대로, 대선 자금을 후보 개인용과 공조직 가동비로 쪼갰다. 노 대통령은 측근을 통해 1,400억 원 정도를 김영삼 후보가 집행하는 비용으로 전달했다. 이 금액이 앞서 소개한 노태우 회고록에 등장하는 금진호 장관을 통해 전달한 1천억 원으로 추정된다.

 

나머지 자금을 공조직 가동비로 민자당에 넘겨주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대선을 몇 달 앞두고 정부가 제2이동통신 사업자를 선정했는데, 선경그룹 최종현 회장이 대주주로 참여한 대한텔레콤이 사업자로 선정된 것이다.

▲ 노태우 대통령과 최종현 SK그룹 회장은 사돈 사이인 동시에 비자금을 빌려주고 빌려쓰는 일종의 사업 파트너이기도 했다.  © NGO글로벌뉴스


야당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사돈인 최종현 회장에게 특혜를 준 것이라고 공세에 나섰다. 야당이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6공 비리의 대표적 사례라며 국정조사를 추진하는 등 여론몰이에 나서자 김영삼 후보가 발끈했다. 이 사건이 자신의 대권 가도에 불리한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한 김영삼 후보는 최종현 회장에게 사업권 반납을 요청하는 등 강력 반발하면서 노태우와 험악한 상황이 연출됐다.

 

2이동통신 사업권 선정 작업 주관부서인 체신부는 한 점 부끄럼 없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사업자를 선정했다며 각 업체의 항목별 점수와 심사평가위원 명단까지 공개하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사태는 점점 악화되어 김영삼 후보는 여론을 등에 업고 노태우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했다.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이 현존 권력과 미래 권력이 충돌하는 양상으로 비화된 것이다.

 

김영삼에게 등 떠밀린 노태우는 1992918일 자신이 만든 민자당을 탈당했고, 109일 여당이 없는 상황에서 중립 거국내각을 구성하여 대선을 치러야 했다. 이 와중에 김영삼에 대한 인간적 배신감, 그리고 민자당에서 쫓겨난 무당적자가 자신을 쫓아낸 당에 공조직 가동비를 제공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김영삼에게 전달되지 못한 공조직 가동비 1,600억 원

 

차일피일 하는 사이 대선이 다가오자 노태우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거액의 정치자금 보관 및 처리는 이현우 경호실장(노태우 임기 말에 안기부장 임명)에게 맡겨졌다. 노태우 대통령은 이현우 실장에게 장차 나라를 위해 요긴하게 쓰일 테니 잘 관리하라라고 지시했다. 이현우는 경호실 소속 경리장교를 동원, 시중은행의 가명·차명계좌를 개설하여 문제의 자금을 분산 예치해 놓았다.

 

노태우는 문제의 돈을 대통령 당선인 김영삼에게 인수인계하려 했으나 김영삼은 대통령에 당선된 후 한 번도 청와대를 찾아오지 않았다. 김영삼은 대통령 취임식에서 전 정권과 한국 현대사의 정통성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정치자금을 한 푼도 안 받겠다고 선언했다. 노태우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정치자금을 한 푼도 안 받겠다고 선언했으니 무슨 수로 이 자금을 전달한단 말인가.

 

노태우 대통령은 당시 월간조선에 연재된 육성회고록에서 당시 정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비자금이) 남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아까 지적한 중립내각에 원인이 있는 것인데, 또 한 가지 원인이 있다면 내가 돈을 애꼈어(아꼈어). 굉장히 애꼈어. 심지어는 인색할 정도로, 그러다 보니 퇴임할 무렵에 큰돈이 남게 된 겁니다. (중략) 사실은 김영삼 대통령하고 상의를 할 이야기였지. 그게 취임사에서부터 시작해서 점점 어려워져 갔단 말이에요. 사정(司正)이다 뭐다 하는 바람에 그냥 내 측근들을 때리기 시작했어요. 그저 (비자금 이야기를) ‘이제 언제 하나, 언제 하나하다 시기를 놓쳐버렸어요.”

 

이 와중에 서석재 총무처장관, 박계동 의원의 폭로로 노태우 비자금이 폭로되었다.

 

김대중과 김영삼의 모의

 

노태우 비자금 폭로는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튀었다. 중국을 방문 중이던 김대중이 누가 오라고 하지도 않았는 데도 불구하고 자진해서 급거 귀국했다. 그는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사실은 노태우로부터 20억 원의 정치자금을 받았다라고 실토했다. 이로 인해 노태우 비자금 사건이 일파만파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김대중은 “20억 원 외에 노태우에게 단 한 푼도 안 받았다. 김영삼 대통령과 관련한 점을 명백히 밝혀라라고 공격했다. 이 말은 내가 이 정도 받았는데 노태우 아래서 대통령 된 김영삼은 얼마나 엄청난 돈을 받았겠는가. 조사하면 김영삼 당신도 무사하지 못하니 알아서 막으라는 강력한 시그널이었다.

 

만약 노태우가 대선 과정에서 김영삼에게 제공한 대선 자금을 폭로하면 김영삼과 김대중은 동시에 유죄의 벼랑으로 추락하고 만다. 상황이 난감하게 된 김영삼 대통령은 자신을 향한 대선자금의 칼날을 부러뜨리기 위해 고심했다. 그 결과 온갖 무리수를 동원하여 5·18 특별법을 제정하여 전두환·노태우를 구속했다.

 

노태우 회고록에 의하면 문제의 정치자금은 실명제 실시 과정에서 정부가 비자금 실체를 인지했다고 한다. 노태우 측은 이 기회에 정부 측과 상의해 정치자금을 정리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정부 측에서 이를 문제 삼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오면서 유야무야 됐다. 정부에서 과거의 정치자금은 문제 삼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접한 노태우는 금진호 의원을 통해 자금 사용을 희망하는 대우·한보·쌍용 등에 상당액을 비싼 이자를 받고 대여해 주었다.

 

이번에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 소송을 둘러싸고 등장한 선경 300비자금의 존재는 이 무렵 노태우가 비밀리에 최종현 회장에게 제공한 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재에 능했던 김옥숙 여사가 비자금을 제공한 용처를 꼼꼼히 기록해 놓았기에 이 돈이 SK그룹에 대여된 사실을 법정에서 인정받은 것이다.

 

비자금 검찰 수사 과정에서 노태우는 자금의 세세한 내역을 검찰에 제출했다. 회고록에 의하면 노태우 측이 가지고 있던 현금은 1,218억 원과 이자, 채권은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등 5개 기업주에 대여한 원금 1539억 원과 이자였다. 원금만 따져도 2,757억 원, 이자를 포함하면 4천억 원이 넘는 거액이었다.

 

검찰은 이 자금에 대해 압류만 해놓고 채권 회수 노력은 하지 않았다. 이 와중에 외환위기가 터져 대우·쌍용·한보 등 채무기업들이 도산하는 바람에 채권 회수를 못하고 날려버렸다. 덕분에 노태우는 미납액을 고스란히 개인이 물어내야 했다.

 

이번 재판과정에서 등장한 선경 300은 노태우 비자금 수사과정에서도 밝혀지지 않았다. 따라서 노태우 비자금은 앞으로 어떤 돈이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더 은닉되어 있을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대체 노태우는 얼마의 돈을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은닉해 놓고 있는 것일까.

 

김영삼의 원죄

 

노태우가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된 후 검찰은 느닷없이 김영삼 대통령 대선 자금은 수사대상에서 제외한다라고 발표했다. 이 발표가 나오자 노태우 대통령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 기업 총수들이 일제히 액수를 부풀려 진술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노태우에게 20억 원을 준 기업인이 50억 원을 주었다고 진술하고, 50억 원을 준 기업인은 100억 원을 주었다는 식으로.

 

이런 일이 대체 왜 일어났을까? 노태우는 다음과 같이 정황을 설명했다.

 

대선 과정에서 김영삼은 노태우로부터 나머지 공조직 가동비가 제공되기를 학수고대했다. 그런데 제2이동통신 사건으로 노태우의 등을 떠밀어 탈당시키자 열 받은 노태우가 공조직 가동비를 내놓지 않았다. 상황이 복잡하게 꼬이자 김영삼은 기업인들에게 손을 내밀어 대선자금을 모금하여 대선을 치렀다.

 

월간조선과의 인터뷰 내용을 묶어서 발간한 "노태우 육성증언" 표지.

 

노태우 비자금 수사과정에서 이 사실이 밝혀지면 김영삼 대통령도 유죄로 몰릴 우려가 있었다. 김영삼의 청와대는 검찰에 압력을 넣었고, 검찰은 기업 총수들과 타협하여 김영삼에게 제공한 대선자금을 전두환·노태우에게 준 것으로 뒤집어 씌워 두 사람을 유죄의 벼랑으로 밀어넣은 것이다.

 

노태우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기업 총수들이 자기에게 주었다고 진술한 금액이 크게 부풀려지는 것을 보면서 내가 이 액수를 부인하면 대기업 회장들과 대질신문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나라꼴이 뭐가 되겠나하는 심정에서 모든 것을 끌어안고 감옥으로 갔다고 토로했다.

 

검찰과 기업 총수들은 김영삼·김대중에게 제공한 정치자금을 전두환·노태우에게 준 것으로 뒤집어 씌워 금액을 짜 맞추고 전두환·노태우를 비자금이나 받아 챙기는 파렴치범으로 만들었다.사정이 이쯤 되다 보니 전두환·노태우 비자금은 깊이 파면 팔수록 그 몸통이 김영삼·김대중이란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역대 대통령들은 전두환·노태우에게 부과된 추징금을 제대로 추징하지 못하고 세월이 흘러 잊혀지길 기다렸다. 이 와중에 세상물정에 어두운 박근혜 대통령이 전두환 비자금을 강제 추징하겠다며 재산 압류라는 칼을 빼들고 난리 부르스를 야기했다.

 

전두환 대통령의 심복이었던 손삼수 씨의 증언에 의하면 전두환 대통령은 재임 중 매년 명절 때마다 박근혜 양에게 꽤 두둑한 생활비를 제공했다고 한다. 그 돈 심부름을 한 것이 손삼수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려울 때 자신을 도와준 전두환의 뒤통수를 야구 방망이로 후려갈긴 셈이다. 이것이 한국 정치판을 난장판으로 만든 정치자금의 어지러운 이면사다.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hanmail.net

 

출처 : 펜앤드마이크(https://www.pennmike.com)

 

 

-노 이혼소송과는 별도로, 노태우 비자금과 김영삼의 비열함이 또다시 튀어 나오는군요. 뒤로는 온갖 더러운 짓을 저지르면서 겉으로는 가장 깨끗한 양 처신한 비열함. 자기 비리를 덮으려고 상대를 모함한 짓, 의 진실은 가릴 수 없는가 봅니다.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