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유명 클럽 버닝썬에서 촉발된 약물 성범죄 의혹이 대규모 집회로까지 이어졌다.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 혜화역 일대에서 열린 ‘남성약물카르텔 규탄시위’에서 참가한 여성들은 “약물을 이용한 성범죄를 철저히 수사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혜화역 1, 2번출구 인근에 모인 집회 참가자들은 △약물 성범죄 부실수사 해명 △유흥업계-경찰 유착관계 척결 △범죄 발생 클럽 폐쇄 등을 요구했다. 참가자들은 성범죄에 쓰이는 약물이 무색무취한 것을 표현하기 위해 회색, 검정색 등 무채색 계열의 옷을 착용하고 집회 장소로 모여들었다. 주최 측 추산 2,000여명이 참가했다.
이날 경찰은 혜화역 인근 200m 길이의 인도와 도로(3차선)에 질서유지선을 설치하고, 경력 300여명을 배치해 집회 현장 주변을 통제했다. 주최 측은 “생물학적 남성은 집회에 참여할 수 없다”며 질서유지선 안 남성들의 통행을 불허했다. 일부 남성들이 집회 장면을 촬영하거나, 실시간 방송을 진행해 경찰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혜화역은 지난해 5월 홍대 남성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이 발생한 뒤 여성단체 ‘불편한 용기’가 대규모 집회를 열었던 장소다. 불편한 용기는 “불법촬영 사건의 피해자가 남자라서 이례적으로 신속한 수사가 이뤄졌다”며 경찰의 편파수사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혜화역 시위는 지난해 12월 6차까지 진행됐고, 마지막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11만명이 모여들었다.
남성약물카르텔 규탄시위가 공식적으로 조직된 건 지난달 6일이다. 폭행 사건에 연루된 서울 역삼동 클럽 버닝썬에서 여성 고객을 상대로 약물을 이용한 성범죄가 공공연히 발생한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주최 측은 “일명 ‘물뽕’(GHB)이라고 불리는 무색무취의 신종마약을 이용한 여성혐오범죄가 또다시 수면위로 드러났다”면서 “지금도 손쉽게 물뽕을 구할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한 단속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수사당국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주최 측은 약물범죄자, 범죄를 방관한 경찰당국, 사회에 만연한 강간 문화 등을 통틀어 ‘남성약물카르텔’이라고 지칭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남성약물강간카르텔의 패배’, ‘남성약물카르텔 여성들이 파괴한다’, ‘GHB OUT’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3시간 가량 구호를 외쳤다. 한 남성이 온라인에서 물뽕을 손쉽게 구매하는 과정을 재연하는 짤막한 연극도 열렸다. 주최 측은 “인터넷에서 컵라면이 익는 동안만큼 빨리 물뽕을 구매할 수 있다”면서 “불법강간약물을 이렇게 쉽고 빠르게 구매할 수 있는 현실이 정상인가”라고 외쳤다.
집회 장소 건너편인 서울대 연건캠퍼스 정문에서는 남성약물카르텔 규탄시위를 반대하는 ‘맞불집회’도 열렸다. 자신을 1인 방송 진행자로 소개한 안모씨는 “성범죄는 남성이 아니라 범죄자가 저지르는 것”이라며 “여성 시위대는 남성이라서 성범죄를 저지른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안씨와 집회 참가자들은 “남혐(남성혐오) 정책을 만드는 여성가족부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