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피아노 앞에 앉은 그는 60여년의 피아노 인생을 베토벤의 소나타에 풀어놓았다.
피아노소나타 제20번의 소박한 연주로 시작해 피아노소나타 제8번 '비창'의 강렬한 코드로 마무리된 음악회에서 우리는 한평생 음악에 헌신한 인간 백건우의 진실한 독백을 들을 수 있었다.
분방한 템포감각, 자연스러운 리듬, 꾸밈없는 표현으로 드러난 백건우의 연주엔 그 어떤 얽매임도 없었다. 무심한 듯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베토벤이 쓴 음표들을 소리로 재현해내는 그의 연주를 들으며, 평생을 피아노 연주에 헌신한 피아니스트만이 해낼 수 있는 '음악 속의 자유'를 봤다.
지난 2007년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전곡 연주에 이어 10년이 흐른 올해, 또다시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전곡 연주에 도전한 백건우는 지난 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쳐진 첫날 공연에서 베토벤의 초기소나타 연주를 시작으로 대장정의 첫발을 내디뎠다.
10년 전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회에서 그가 들려주었던 영롱하고 강렬한 음색에 비교해본다면 이번 공연에서 들려온 피아노 소리는 다소 빛이 바랜 듯했지만 그가 음악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훨씬 더 강렬했다.
첫 곡으로 연주된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제20번은 청년 시절의 베토벤이 쓴 단순한 소나타로 기교가 쉬운 탓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는 초보자들도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곡이지만, 백건우의 피아노 연주로 드러난 소나타 제20번은 역시 달랐다.
이 소나타의 2악장에서 마치 손이 저절로 움직이듯 자연스러운 리듬 처리로 미뉴에트의 즐거움을 전해준 백건우의 연주를 들으며, 굳이 애쓰지 않고도 저절로 연주가 이루어지는 음악적인 '무위'(無爲)의 경지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소나타 제20번에 이어서 곧바로 연주된 소나타 제1번 1악장에선 소나타형식의 긴장과 이완의 구조를 거침없는 연주로 풀어내는 그의 연주에선 음표 이면에 담긴 작품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거장의 풍모를 느낄 수 있었다.
음악회 후반부 마지막 곡으로 연주된 피아노소나타 제8번 '비창'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백건우는 이 곡을 연주하는 동안 '비창'이라는 정서를 나타내고자 각별히 애쓰는 것 같지 않았지만 1악장의 폭풍 같은 느낌은 그대로 전해졌고, 각별히 아름다운 2악장도 처음엔 담담하게 연주됐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점층적으로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그 아름다운 선율의 감동은 콘서트홀 전체로 퍼졌다.
이 소나타를 마무리하는 3악장에서 백건우는 악보를 넘어선 거침없고 자유분방한 연주를 통해 이 곡을 수없이 연주하고 연구해왔던 피아니스트만이 해낼 수 있는 '거장의 자유'를 보여줬다. 그것은 악보의 제약에서 벗어나 음악의 본질을 드러내는 연주였다.
'비창' 소나타의 마지막 코드가 끝나자 콘서트홀 객석을 메운 관객들은 60여년의 피아노 인생을 녹여낸 백건우의 진실한 연주에 감사와 존경의 박수를 보냈다. 음악 앞에 결코 가식이 없는 그의 솔직한 연주에 가슴 뭉클하지 않은 이 없었으리라.
청중의 박수갈채가 좀처럼 그치지 않고 커튼콜이 계속되자 백건우는 손가락으로 '7'자를 만들어 보이며 앞으로 7회의 공연이 더 남아있으니 자신을 보내달라는 뜻을 관객들에게 전했다. 그제야 박수 소리가 진정되고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첫날 공연이 마무리되었다. 백건우의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전곡 연주회는 9월 8일까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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